천만 영화라는 '괴물'이 집어삼킨 다양성의 묘지
주말 오후, 영화 한 편 볼까 싶어 예매 앱을 켠다. 스크롤을 아무리 내려도 온통 똑같은 포스터뿐이다. A관 12:00, B관 12:10, C관 12:20... 특정 대작 영화가 상영 시간표를 도배하고 있다. 다른 영화를 보려면 새벽 7시 조조나 밤 12시 심야 시간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대세'라고 부르며 군말 없이 티켓을 끊는다. 그리고 며칠 뒤 뉴스는 "최단기간 천만 관객 돌파"라는 헤드라인을 쏟아낸다. 화려한 폭죽이 터지지만, 그 그늘 아래서 수십 편의 작은 영화들은 소리 없이 질식사하고 있다. 과연 이 천만이라는 숫자는 관객의 순수한 선택의 결과일까, 아니면 시스템이 만들어낸 착시일까? 이 글에서는 한국 영화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스크린 독과점'이 어떻게 관객의 볼 권리를 침해하고 영화 생태계를 파괴하는지, 천만 신화의 어두운 이면을 심층 분석해 본다.
1. 기울어진 운동장: 수직 계열화가 만든 '밀어주기'
스크린 독과점의 근본적인 원인은 대기업 중심의 '수직 계열화(Vertical Integration)'에 있다. 영화를 만드는 투자·배급사와 영화를 트는 극장(멀티플렉스)이 한 몸인 구조다. CJ(CGV), 롯데(롯데시네마), 메가박스(중앙그룹) 등 거대 기업들은 자사가 투자하고 배급하는 텐트폴(Tentpole, 확실한 흥행 대작)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준다.
이를 업계에서는 '밀어주기' 혹은 '광역 개봉(Wide Release)'이라 부른다. 전체 스크린의 80% 이상을 특정 영화 한 편이 장악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말처럼, 틀어주는 게 하나밖에 없으니 관객은 그것을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다. 출발선부터 다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중소 배급사의 영화나 예술 영화는 관객과 만날 기회조차 박탈당한다. 자사 이익 극대화를 위한 기업의 논리가 문화 다양성이라는 공공재적 가치를 압살 하는 현장이 매주 주말 극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2. '퐁당퐁당' 상영: 이름 없는 영화들의 비명
독과점의 가장 큰 피해자는 소위 '허리급 영화'와 다양성 영화들이다. 이들은 개봉 첫 주부터 스크린 확보 전쟁에서 밀려난다. 운 좋게 상영관을 잡더라도 '퐁당퐁당' 상영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퐁당퐁당이란 영화를 하루 종일 상영하지 않고, 조조 1회, 심야 1회 식으로 징검다리처럼 배치하거나, 아예 요일별로 교차 상영하는 것을 말한다. 관객이 접근하기 가장 힘든 시간대에 영화를 배치해 놓고, "관객이 안 들어서 내린다"는 명분을 만든다.
영화는 입소문이 중요하다. 초반에 관객이 적더라도, 영화가 좋으면 서서히 관객이 늘어나는 '개싸라기 흥행'이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독과점 구조에서는 입소문이 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개봉 3일 만에 성적이 안 나오면 가차 없이 간판을 내린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수작들이 빛을 보기도 전에 사장된다. 이는 단순히 영화 한 편의 실패가 아니라, 다양한 취향을 가진 관객들이 잠재적 '인생 영화'를 만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3. 좌석 점유율의 함정: 천만 영화는 만들어지는가?
천만 영화의 탄생 배경에는 '좌석 점유율(Seat Share)'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흥행 대작의 경우 스크린 점유율보다 상영 횟수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2시간짜리 영화를 30분 간격으로 틀어대니, 관객은 마치 버스 배차 간격처럼 편하게 영화를 골라 볼 수 있다.
반면, 다른 영화들은 하루 1~2회 상영이 고작이다. 접근성의 차이는 곧 관객 수의 차이로 직결된다. 어떤 영화는 좌석 판매율(실제 관객이 든 비율)이 높아도 상영관을 늘려주지 않는 반면, 대기업 배급 영화는 좌석이 텅텅 비어도 스크린을 유지한다. 이를 통해 "예매율 1위", "박스오피스 1위"라는 타이틀을 방어하고, 이 타이틀을 보고 다시 관객이 몰리는 순환 구조를 만든다. 즉, 천만 관객 중 상당수는 자발적 선택이라기보다, '강제된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수치일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4. 다양성의 실종: 문화적 근친교배의 위험성
생태계에서 단일 종(種)만 번성하면 전염병 하나에도 멸종 위기를 맞는다. 영화판도 마찬가지다. 스크린 독과점은 장르의 획일화를 부추긴다. 돈이 되는 범죄 액션, 신파 드라마, 거대 자본이 들어간 블록버스터만 살아남고, 작가주의 영화나 실험적인 장르는 설 자리를 잃는다.
투자자들은 "돈 안 되는 영화"에 투자하기를 꺼리게 되고, 감독들은 독창적인 시나리오보다 "천만을 노릴 수 있는 공식"에 맞춘 기획 영화를 만들도록 강요받는다. 결과적으로 한국 영화는 점점 비슷비슷해진다. 이를 '문화적 근친교배'라고 부를 수 있다. 다양한 시선과 목소리가 사라진 영화계는 결국 관객에게 피로감을 주고, 장기적으로는 한국 영화 전체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자충수가 된다. 최근 한국 영화 위기론이 대두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가 아니라, 볼 수 있는 영화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관객이 떠나는 것이다.
5. 프랑스의 사례와 스크린 상한제: 대안은 있는가?
그렇다면 대안은 없을까? 영화 선진국 프랑스의 사례를 눈여겨볼 만하다. 프랑스는 법적으로 한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일정 비율(약 30%) 이상을 점유할 수 없도록 규제한다. 또한, 멀티플렉스 건립을 제한하고 예술 영화 전용관을 국가 차원에서 지원한다.
한국에서도 '스크린 상한제' 도입 논의가 꾸준히 있어 왔다. 특정 영화가 황금 시간대 스크린의 50% 이상을 가져가지 못하게 법으로 막자는 것이다. 물론 "시장 논리에 맡겨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극장 입장에서는 돈 되는 영화를 트는 것이 당연한 영업 활동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공산품이 아니다. 그것은 한 나라의 정신과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뷔페에서 김치찌개만 강제로 먹어야 한다면 그것을 뷔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최소한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는 '규제'가 아니라 생태계 보존을 위한 '보호'로 해석해야 한다.
6. 결론: 관객이 똑똑해져야 극장이 바뀐다
스크린 독과점은 기업의 탐욕과 제도의 미비가 빚어낸 괴물이다. 하지만 이 괴물을 키운 것은 우리 관객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편의성에 길들여져 스크린을 도배한 영화만 소비해 주는 한, 극장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관객이 깨어 있어야 한다. 예매율 1위라는 숫자에 현혹되지 말고, 나의 취향을 찾아 작은 영화관을 검색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나는 다른 영화를 볼 권리가 있다"고. 다양한 영화가 공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천만 관객'이라는 허울 좋은 숫자 놀음에서 벗어나, 진짜 영화가 주는 다채로운 감동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의 힘은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